지혜롭게 사는 법/대인 관계

눈물 연기, 슬픔에 대한 고찰. 이별, 사랑과 관계 맺기에 대하여

Eunylife 2020. 1. 21. 01:57

최근 연기에 관심이 생겼었다. 

내 표정도 사회적으로 보여지는 내 모습인데 방치한 것 같아서, 내 표정까지, 몸짓까지 내 맘대로 컨트롤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서 겪은 고생이 많아져서인가, 다양한 감정을 느껴봐서인가, 공감할 수 있는 폭도 넓어졌지만 좀더 울보가 되었다.

울고 싶어서가 아니라 슬픈 상황에서 눈물이 종종 툭 튀어나와버리는 경우가 생겼었다.

그게 나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솔직하고 순수한 나의 감정표현이니 말이다.

 

오늘 재미 삼아 눈물연기를 몇 초 안에 짜낼 수 있는지 혼자서 영상을 찍어보았다.

첫번째 시도는 2분40초 정도로 꽤 빨랐다.

두번째 시도는 직전에 한번 눈물 짜내서인지 더 몰입이 안되었는데, 또다른 생각을 하면서 집중하다보니 6분 40초 정도만에 울었다.

이걸 하다보니 느낀 게 있어 글을 쓴다.

 

두 번 다 처음엔 울기 위해 슬펐던 일, 고생했던 일, 억울했던 일을 짜내며 생각해봐도 눈물이 안나고 그냥 지나간 일들이다보니 무덤덤하고 지금 잘되서 다행이다 싶은지 눈물이 안났다.

그러다 두 번 다 공통적으로 눈물을 흘리게 된 생각은, 나와 가장 가까운 관계였던 사랑하는 사람과 멀어지는 일, 이별, 내가 버려지고 혼자 남겨지는 일, 버려진 쓸쓸함과 스스로의 처량함에 대한 연민, 그리고 지난 날 상대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함께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보고 싶다는 감정들이었다.

 

첫 번째 눈물 때는 전남친과 이별할 때, 나를 떠나버리지 말라는 듯 애원하며 상대를 붙잡았던 그 눈물을 떠올렸다.

두 번째 눈물 때는 사랑하는 어머니가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볼 수 없고, 지금 떨어져 있는데 보고 싶고, 나중에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될 것 같다는 찡한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두 사람 모두 나와 최근 가장 관계가 가깝고 친밀했던 사람들이다. 전남친은 이젠 멀어졌지만, 내가 솔로로 썸도 없이 혼자 지내다보니 대체할 수 있을 만한 관계가 없어서인지, 그렇게 떠올라졌다. 

최근 울었던 일들 중에서 떠올려보면 첫 번째 눈물도, 두 번째 눈물도 작년에 흘린 적이 있긴 하지만, 그 외에 내가 진짜 힘든 사건에서 억울하게 느꼈던 적이 있는데 그 때 억울함에 대한 호소를 할 때 운 적이 있었다. 근데, 연기할 때는 그런 상상으로는 눈물은 잘 안났다.

지나간 힘든 일을 떠올리면 꽤나 눈물 잘 흘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덤덤했던 것 같다. 사건이 잘 해결되어 현재 잘 되어서 더 그럴지도 모르지만. 

가까운 관계에 대한 눈물, 이별에 대한 눈물이 가장 마음을 울리는 눈물이라는 걸 느꼈다.

 

항상 사랑을 할 땐 미칠 듯이 좋지만 이별은 그 미칠 듯 좋았던 만큼 더욱 마주하기 힘든 고통이다.

그래서 사랑이 끝나고 이별이 되면 앞으로 더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기도 했고, 휴식기가 많이 필요하기도 했다.

사랑이 끝나고나면 꼭 이별의 상처가 동반된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 사랑이 찬란할수록, 의지했을수록, 하나의 자아처럼 붙어있던 관계가 나에게서 떼어져나가는 고통, 버려지고 혼자 남게 되는 그 고통이 잔인함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 그냥 재미 삼아 해봤던 눈물연기를 통해 한 번 더 느끼게 된 진리가 있다.

사랑의 기쁨이 있어야 이별의 슬픔도 느낄 수 있고,

이별의 슬픔이 있어야 사랑의 기쁨도 느낄 수 있다.

반대되는 감정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건,

삶에서 플러스 감정과 마이너스 감정은 합쳐서 0을 만들며 중심을 이뤄나가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을 하지 않으면 상처도 받지 않겠지만 뭔가 너무 심심하고 밋밋하다.

그런 느낌을 대학교 2학년 때인가 가을에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느꼈던 적이 있다.

내가 뭔가를 놓치는 것만 같은 느낌, 그 당시에 너무나 평온하고 안정감 있고 감정 기복도 없는데, 정말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판단하며 괜찮게 잘 살고 있는데, 앙꼬 없는 찐빵처럼,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살고 있는 것만 같은 고독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살아도 나쁠 건 없다. 

0으로 아무 것도 느끼지 않는 것보다, 큰 +와 큰 -의 반복을 느끼며 사는 게 과연 더 낫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인생을 살면서 무조건 사랑을 해봐야 한다고 하는 말도 참 강요스럽다.

그냥 어떠한 삶이든 감정은 +가 있으면 -도 있을 수 있고, 그 반대로 -가 있으면 +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저 너무 크게 상심하지 말고,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진리를 생각해보니 오히려 더 열렬하고 설레는 멋진 사랑에 뛰어들 마음가짐이 조금 더 생긴 것 같다.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지만, 그렇게 닫고 있으면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겪을 수 없음을 알았으니까.

마이너스가 무섭다면 플러스도 못 느낀다는 걸 알았으니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결국 관계가 중요하다.

즐거운 순간 뿐 아니라 힘든 순간, 마지막 순간, 그 어느 때이든 생각나는 내게 중요한 사람, 삶에서 가장 큰 감정의 폭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나와 사랑으로 서로 관계를 주고 받는 사람이다.

그런 순간들에 떠올리는 것들이 어떠한 직업적인 일이나 사건이나 취미나 물건 따위의 것들이 아니다.

 

사랑에 멋모르고 뛰어들다가 정들어서 정을 떼야될 때 울고불고 난리치는 것,

나는 어느 순간 그런 관계들이 되게 줄었다.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 결국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혼자만의 삶을 편하게 느끼고 잘 영위하는 내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재밌는 아이러니다.

나는 혼자 여행가는 것도 잘하고 좋아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약간 질렸고 외로움도 느끼기도 했다.

 

혼자 하는 것보다 진짜 좋아하는 애인과 같이 데이트하며 어디를 가도 그 데이트 자체에서도 만족이 될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 싶다.

그게 애인이 아니더라도 친구든 모임이든 뭐든, 맘이 잘 맞고 서로를 아껴주며 진심으로 챙겨줄 수 있는 진정한 좋은 관계인 사람들과 말이다.

나는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고 누군가에게 먼저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올해는 나도 남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강요는 아니지만, 사랑과 관계 맺기, 내가 사실 진정 원하는 것이라는 것.

힘들면서도 달다는 것, 난 수고를 거치더라도 열매를 맺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