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게 사는 법/대인 관계

권력에 대하여. 진상, 갑질(feat.책 '권력의 기술')

Eunylife 2020. 1. 22. 23:26

사람의 원래 본성은 선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성무선악설이라고도 생각했었다.

지금은, 악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본질을 꿰뚫어보려 할수록, 세상의 많은 이해할 수 없는 범죄들과 이기심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언뜻 나도 모르게 동화되거나 비슷한 행동을 하고 놀랄 때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나에겐 어제가 그랬다. 평범한 일상 같던 하루였다.

은행에서 필요한 서류가 있어서 뗀 후에 달력 사은품 좀 주실 수 있냐고 했는데, 직원분이 없다고 그랬다.

달력 말고 다른 것이라도 달라고 했는데 나한테 상품 만들어야 되는 거고 그냥 주는 건 없다고 했다.

다른 은행에서 지인이 달라고 하면 사은품 많이 챙겨줬던 것도 목격했었고, 나도 상품 만들지 않고도 받은 적들이 있기 때문에 없다는 말이 나를 바보로 보나 싶은 마음이 들어 속으로 좀 반발심이 생겼다.

볼펜 하나를 사은품이라고 줬는데, 만족하지 못한 표정으로 좀더 챙겨달라고 말했다.

핫팩 하나 있다고 줬는데, 내가 다른 거 없냐고, 생필품 같은 거 달라고, 직원은 그런 거 없다고 실랑이를 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내가 "저 주거래은행인데 이렇게 하시면 안되실텐데..." 라고 했더니, 비닐팩 받았다.

"감사합니다." 하고 나왔다.

 

그렇게 나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한 짓이 진상 아닌가 싶었다.

왜 그렇게 서비스를 받지 못하면 나만 호갱취급하는 것 같고 나를 바보로 무시하는 것 같은지.

나도 이득을 얻고 싶고, 서비스를 받고 싶은데,

좋은 말로 하면 챙겨주지 않을 때, 

불편한 진상짓 해서라도 얻어내는 것,

그게 손님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얻어낸 내 모습이 왠지 싫어졌다.

왜 은행업무를 하고 그냥 나오지 못하고 사은품이 당연한 것마냥 받으려고 했을까.

그냥 그 직원은 거의 한 번 보고 말 사람이니까,

그리고 나는 손님으로 대우받으러 간 거고, 그 직원은 서비스직이니까,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고 대했던 것 같다.

뜯어내려고 하는 진상짓도 적당히 해야지, 이렇게 기분 안좋게 볼펜, 핫팩, 비닐팩 하나더 받아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졌다.

 

이기심이 권력으로서 표출될 수 있는, 서비스업종의 직원을 대할 때, 그런 성질이 나오는 건가 싶다.

흔히들 종업원들한테 대하는 모습으로 인성을 알 수 있다고 하는 말처럼 말이다.

나는 노력해야만 그런 분들한테 잘하는 모습을 보이고,

솔직한 내 본성대로 하면, 맘에 안들면 컴플레인해서 원하는 걸 얻으려고 한다.

그걸 피곤하게 보면 나쁜 말로 진상이라고도 할 거다.

그런데, 어제 저 일이 있고나서 그 짓을 좀 줄여야하나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 짓도 어쩌면 갑질의 일종일 수 있으니까.

심한 짓도 아닐지도 모르지만, 일종의 나 잘 대해달라는 그런 말을 요구하는 거니까.

그렇게 내가 쉽고 편하게 권력의 위에서 대할 수 있는 일회적인 관계에서는 참 편하게 행동하는구나 싶었다.

그 직원들은 그 곳이 생업과 노동의 현장이니까, 그런 서비스가 돈을 받는 이유일지도 모르지만,

굳이 손님이 되서 그들을 스트레스 주도록 진상 부리는 건 그들에 대한 존중의 태도가 아니니까.

 

내가 내 삶에 여유가 없나보다 싶기도 했다.

서비스직 직원들에 대해 내가 먼저 서비스를 할 만큼의 인성적인 여유가 없다.

서비스 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고, 손님으로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받고 싶은 거다.

받고 싶은 마음은 있고 주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는 거다.

 

어떤 사람들은 갔던 곳에 또 가서 단골 만들어 혜택을 받기도 하던데,

나는 그런 게 거의 없다.

근데 단골이라고 해서 더 혜택을 주면 다행인데,

세상에는 장사꾼들이 단골한테 더 호갱취급하고 더 빨아먹는 꼴을 많이 봤다.

그래서 단골보다 진상으로 이득을 따지며 혜택을 받으려 했었나보다.

 

이 사실을 깨달으니 현타가 왔다.

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내 삶에 의미 있는 관계가 있나 생각해보게 되고

내가 잘 살고 있나 생각해보게 된다.

 

권력이라는 단어가 맴돌며 교보문고 서점에 가서 눈에 들어온 책은 로버트 그린의 "권력의 기술"이었다.

그 책에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권력의 욕구가 있다고 했다.

권력의 욕구가 없다고 하는 사람은 더 조심해야 한다는 그의 말이 인상깊게 남는다.

좋게 보이고 포장하려는 사람이거나, 야심을 숨기고 있거나, 모두 다른 사람에게 더 높은 위치로 자기를 인간적으로 세팅한 것이니 권력의 기술 중 하나라고.

인간관계가 있는 곳에 권력이 있고, 권력의 역사는 오래되었다고.

어차피 해야 하는 게임이니 그럴 거면 권력의 게임에서 기술을 익혀 승자가 되는 게 낫고 그게 세상에도 더 좋은 거라고.

방금 내용은 갑질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가서 나쁜 쪽의 갑질이 아니라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갑이 되라는 얘기 같았다.

 

이 책을 통해 다행히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의 본성은 모두 권력의 위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본성적으로는 갑질의 욕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것이 되면 악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말했던 '손님은 왕이다'라는 듯 서비스를 받으려는 정신은, 위의 책에서도 자신을 어떻게 취급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나에 대한 취급이 달라진다는 진리로 나와 있다.

호구가 되지 않고 진상이 되는 길을 택한 건 당연한 권력의 기술을 사용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책에서는 또 재밌는 이야기가 나온다.

신비감, 한 번에 파악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 그런 것들이 그 존재를 우러러보게 만든다고.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환상을 만들어야 한다.

보여지는 이미지는 대중들에게 맞춤형으로 취사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기술이 권력을 갖게 만든다.

너무 완벽하다면 허점이나 솔직한 면을 보여주는 것도 인간적인 매력을 흘리는 권력획득의 전략 중 하나이다.

사람들에게 한 번에 꿰뜷어볼 수 있을만큼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는 존재는 권력을 갖지 못한다.

속을 알 수 없이 양파 같은 매력을 갖고 계속적으로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면 그 권력은 오래간다는 것이다.

 

또다른 인상 깊던 이야기는, 자기보다 높은 권력자가 함께 같은 자리에 있다면 자기가 빛나면 안되고, 그들이 주인공이 되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 곳에서도 빛나고 있으면 미운 털이 박혀 괴로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권력관계라는 것이 이렇게나 미묘하고도 체계적이라는 데서 재미를 느꼈다.

사회적인 면에서 이렇게 과학적으로 기술들을 뽑아내서 역사적 우화들과 함께 싣고 있는 책이어서 흥미로웠다.

 

권력관계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는 인정하기 싫어하지만 원초적으로 갖고 있는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인정하기 싫었던 나의 내면의 추악한 본성을 우연한 상황을 통해 마주했을 때 자괴감이 든다.

착하게 살면 바보된다거나 손해본다는 세상의 우스갯소리도 있다.

 

인성을 갖춘 성인군자들은 사실은 권력의 기술을 갖추고 선한 행세를 하는 갑 중의 갑일지도 모른다.

을에게는 착한 인성으로 사람을 품고, 갑에게는 당당하게 자기처럼 인성을 갖추라고 요구할 수 있는 그런 이들 말이다.

강약약강, 강한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것이 권력의 기본 본성이겠지만.

강강약약이 된다면 아래로부터 추앙받는 인성을 갖춘 인물, 권력관계의 진정한 갑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